2016. 6. 1.

권장도서는 그냥 ‘권장'일 뿐

엄마가 학생을 데리고 와서 질문한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학생이 서점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하세요.”

그럼 엄마는 혼란에 빠진다. “아니, 그냥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도 아깝고, 애가 뭘 읽을지도 모를 거고…”

다른 학원으로 갔더니, 거기서는 추천도서를 정해줬다. 그 학원에 등록한다.

서점에서 책 고르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어차피 그 학생 그 시간에 친구들하고 카톡하거나 학원 가거나, 뭐 스케줄이 뻔하지 않나?), 애가 뭘 모르니까 일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 이 때 서점에서 책 고를 줄 모르면 나중에 커서도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누가 일러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베스트 셀러만 읽게 된다. 남들이 읽었던 거. 그러면 남들과 달라질 게 뭐가 있나? 이렇게 우리는 시작부터 애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차단한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르는 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고 귀찮다.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걸 겪지 않도록 부모가 방어망을 쳐주고 애의 손에 책을 쥐어주려고 한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제한 된 시간 내에 어떻게 고를지 이런 걸 다 해보는 것도 연습이다. 이런 연습을 안 하면 남들이 읽으라는 “권장도서"만 읽게 된다.

아이 보고 고르게 하라고 할 때 빠지는 혼란에 대해 생각해보자. 엄마의 혼란은, 애가 잘못 고를까봐 걱정이 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책이란 게 잘못된 선택이 있을까? 좋다, 잘못 고를까봐 내가 골라줬다고 치자.

“Catcher in The Rye (호밀밭의 파수꾼) 읽게 하세요. 이거 미국 고등학교 권장도서니까 읽으면 좋을 거에요.”

이렇게 해서 그 학생이 이 책을 읽으면 그건 잘한 선택인가? 5학년 아이에게 코엘로의 Alchemist (연금술사)를 읽게 했다. 영어 자체가 어려운 글이 아니라 쉽게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책에 대해 물어봤더니 내용은 쉽게 설명을 잘했다. 그런데 그 이상 나오는 게 없다. 행복이 뭐니? 그 청년이 끝에 깨달은 게 뭐니? 너가 그 청년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에 빠진 아이한테 한 청년의 행복을 찾아 나선 여행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하라고 하면 뭐가 나올까?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마술, 용, 괴물과의 싸움, 오크와의 전쟁, 제다이, 우주전쟁 등으로 가득찼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가 책이 재미없었단다!

중학생이 학원 북클럽에서 Life of Pie를 읽는다고 했다. 재밌냐고 했더니 그냥 그렇다고 했다. Life of Pie는 나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물론 학원 수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책을 정해서 하는 거지만, 이 아이는 학원에서 정해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걸 하면 학원을 가겠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게 안 되는 애가 학원에서 저거 읽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서점을 가야지 왜 책을 읽으려고 학원을 가나?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

선생이 선택해주면 잘한 선택이고 학생이 스스로 고르면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애를 너무 바보취급한다. 책은 그냥 애가 읽고 싶은 거 읽으면 된다. 읽는 게 중요하지 Newbery 추천 도서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남들이 읽은 책, 유명한 책 읽었다고 뿌듯해 할 필요 없다. 애가 읽고 좋아하면 그걸 뿌듯해 해야 한다. 그 책이 애한테는 인터내셔널 베스트 셀러보다 백배 나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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