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5.

[내일신문 칼럼] 그릿(grit)과 SAT리딩

미국 대학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1편) - 그릿(grit)과 SAT 리딩

요즘 미국 교육계에서 그릿(grit)이란 단어가 화두다. 그릿이란 우리말로 집념, 투지 등을 나타내는 말로,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할 수 있는 의지력을 말한다. 이 단어는 펜실베니아대학(UPenn)의 심리학 교수 덕워스(A. Duckworth)가 어떤 아이가 학업적으로 성공하는지, 또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지 연구하여 밝혀낸 결과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세기 초에 지적지능(IQ)이 나왔고, 90년대에 다니엘 골만에 의해 감성지능(EQ), 사회지능(SQ)이 등장했다. 또 도덕지능(MQ)도 있다. 하지만 덕워스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는 IQ도, EQ도, SQ도 아닌 바로 이 ‘그릿’이라는 거다.



필자가 매해 학생과 부모를 상담할 때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그릿’이다. 성공적인 미국 대학 입학까지는 의지력의 싸움이다. 매해 이 점을 강조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만 고개를 끄덕일 뿐, 결국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 한국 부모와 학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예를 들어, 애가 역부족이니 돈으로 해결하자, 아니면 족집게 강사나 족보의 덕을 보자는 거다. SAT 단어 쉽게 외우기, 여름방학 동안 단어 3,000개 외우기, 여름방학 동안 SAT 점수 300점 올리기, 더 나아가서는 불법 유출문제를 통해서 고득점 받기 등 우리나라 부모와 학생은 이러한 “편법”에 대한 유혹을 늘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지름길을 통한 단기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SAT 리딩은 우리나라 수능시험처럼 시험문제만 많이 풀어서 원하는 점수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한여름에 리딩 100점 올리기가 (이게 가능하다는 광고를 봤다면 그건 그냥 광고로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어려운데. 현실은 전혀 안 그렇다. 리딩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자. 무슨 족집게 단어리스트나 어떤 특효법이 있어 그것만 하면 점수가 오를 것으로 바라는 부모와 학생이 아직도 대다수이다. 이래서 우리나라 SAT 업계에서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는 사건들이 매해 터지는 거다.

그럼 이 ‘그릿’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릿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연세대 김주환 교수가 본인의 저서 ‘그릿’에 상세히 설명했다. 여기서는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그동안 많은 학생을 본 경험을 통해 SAT 리딩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범하는 흔한 오류에 대해 세 가지만 먼저 소개하겠다.

1. 육상 선수가 되려면 살부터 빼자 (좋은 운동화를 사줄 것이 아니라.)

단어가 턱없이 부족한데 기출문제 많이 푸는 아이, 일반 단어 실력도 부족한데 SAT 레벨 단어 리스트 공부하는 아이, 리딩이 500도 안 되는데 모의고사만 열심히 보는 아이, 이제 9학년인데 SAT 학원 바로 들어가는 아이, 도대체 이런 아이한테 왜 “비싼 운동화”를 신겨주는지 모르겠다. 돈과 시간 낭비다. 대부분 이런 아이의 경우에도 SAT 단어 리스트 몇천 개 외우는 것과 문제 푸는 요령, 그리고 풀어본 실전문제 개수에 공부의 중점을 둔다. 단어를 모르는 아이한테 아무리 문제 푸는 요령을 알려주고 실전문제를 많이 풀게 해도 점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레벨에 맞는 단어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 9학년이건 11학년이건 단어가 부족한 학생은 레벨에 맞는 단어부터 해야 한다. 100m를 20초에 뛰는 아이가 나이키 운동화 신으면 12초로 뛰나?

학원에 가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 시험에 대한 자세한 정보, 외워야 할 단어 리스트, 유형별 문제 분석, 시험 볼 때 적용할 각종 전략 등. 또 공부도 직접 시킨다 - 모의고사도 정기적으로 보고, 단어시험도 매일 본다. 그런데 이건 마치 뛸 줄도 모르는 아이한테, 출발 때 자세는 어때야 하고, 장거리에는 어떻게 페이스 조절하고, 코너를 돌 때는 몸을 몇 도로 기울여서 뛰고 등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세부전략과 기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정작 애는 살이 쪄서 몇 걸음만 뛰어도 숨을 헐떡인다. 아이가 이런데도 엄마는 최고의 육상프로그램에 넣고 싶어한다. 애가 불쌍하다. 학원 수업 무조건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의 몸 상태를 좀 보라는 얘기다. 건강진단을 먼저 하고 그에 맞게 몸(그릿)을 먼저 만들자. 이러지 않으면 애는 바로 지쳐 무너진다.

2. 어떤 종목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체력이 문제다.
SAT 점수가 계속 안 나오는 아이는 영어를 못하거나 단어 실력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고, 공부 습관 즉,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아이한테 그 동안 제시하는 여러 해결책 중 하나가 SAT 대신 ACT를 보라는 거다. ACT가 SAT보다는 쉬우니까. 그런데 이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ACT 공부는 쉬운가? 나이키 신을 수준이 안되니까 리복을 신기면 해결되나? SAT를 하건 ACT를 하건 공부방법이 문제다. 10분도 집중을 못 하는 아이는 뭘 해도 똑같다. 자신의 체력상태에 맞는 공부방법을 찾아서 공부를 못하는 근본문제를 해결해야지 시험 종류만 바꾸면, 학원만 바꾸면, 기출문제만 풀면 문제가 해결되나? 각자 체력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먼저 진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공부방법을 찾아야 한다.

3.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생각해보자.
학생과 부모 모두 점수에 민감하다 - 학원에 다니면서 매주 보는 모의고사 점수가 향상하는지 하락하는지. 필자의 학생 중에 리딩이 400대인 학생이 학원 수강한 지 3주가 넘었는데도 리딩 점수가 계속 똑같은 학생이 있었다. 엄마가 전화하여 학원을 바꾸겠다고 한다. 필자의 학생 중 또 한 명은 전해 여름에 타 학원에서 리딩이 400에서 시작하여 600까지 상승했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 학생은 그만한 실력이 안 되는데 말이다. 예상대로 모의고사 내내 500을 넘지 못했다. 3주가 지나도 리딩 점수가 안 오르면 학원을 바꿀 생각을 하면서, 리딩점수가 400에서 600까지 꾸준히 상승하는 걸 보고는 그런 생각을 안 한다. 이토록 SAT리딩에 대해서 학생이나 부모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 리딩이 400에서 시작하면 3주가 지나도 400대이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아이는 한여름 내내 공부해도 400대다. 하지만, 그 여름 동안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가 중요한 거다. 열심히 해도 점수는 당장 안 오를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지속적으로 더 하면 나중에 오르기 시작한다. 400에서 600으로 한 여름 동안 향상된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는 학원은 다음부터는 다니면 안 된다.

모의고사 점수보다, 내가 문제지를 봤을 때 문장이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공부를 하고 나서 얼마나 쉽게 읽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답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전에는 내가 10m만 뛰어도 숨이 찼는데 이제는 50m는 잘 뛸 수 있는지 평가해보자. 운동화는 신경 쓰지 말고.

(내일신문 01/1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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