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2.

영어도 못하면서 SAT 점수만 높은 우리 아이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압구정에 우리나라 토익과 토플 시장을 석권한 학원이 있었다. 거기 수업만 수강하면 정말 토익과 토플 점수가 다른 곳에서는 얻기 힘들었던 고득점을 단기간에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점수로 직장과 미국 대학에 지원하여 성공한 학생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렇게 높은 점수를 얻은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어떨까? 특히 영문 독해와 작문 실력은 어떨까? 사실 높은 점수를 얻기 전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학원에서 정답을 고르는 요령, 작문 템플릿을 연습하고 외워서 (단어도 좀 외웠고) 점수가 높아진 거다. 과거 미국에 유학 갔던 사람들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고) 다 알 거다. 본인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토플 점수를 얻었지만, 이 점수가 본인이 미국 대학에 가서 하는 영어 독해와 작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모두 알 거다. (어려운 독해와 작문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일반적 독해와 작문을 말하는 거다.)

지금 SAT가 그렇다. 불법유출 문제, 정답 맞추기 비법, SAT 에세이 외워서 쓰기 등 점수를 올리는 방법은 아주 많고 그동안 많은 우리나라 학생이 이런 한국형 학원교육을 통해 점수를 잘 받았고 아직도 잘 받고 있다 -- 단어만 제대로 외워도 리딩 800만점에 650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렇게 해서 내가 SAT에서 총점 2300을 받은 것과, 미국 학생이 샘플 시험 문제 10개 정도 풀고 2300 맞은 것이 같은 것인지를.  나와 미국인 친구는 SAT 점수가 같다. 하지만 영어 실력은 어떨까? 아마 비교가 안 될 거다. SAT 단어만 많이 안다고 미국에서 대학 생활 잘할 수 있나? 그런데 그런 미국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거다. SAT 점수를 주입식 단어 암기와 문제 훈련을 통해 올려서. 영어 독해 실력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러니 아이비리그 가서도 헤매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고, 대학 생활이 즐겁지 못하고, 큰 성과없이 그냥 졸업만 어떻게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학원이나 취업 등 그 다음 진로도 별볼일 없게 되고.

(독해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문 분석을 많이 했더니 학생이 집에가서 엄마한테 이른다. "엄마, 이 선생님 수업진도가 너무 느려." 그리고 학원으로 전화가 온다, 그렇게 해서 그 많은 문제를 다 끝낼 수 있겠냐고. 엄마나 학생 모두 문제를 다 풀어보는 게 목적이다. 다 풀어보면 뭐하나? 영어실력이 늘지 않아서 시험 보면 점수가 그대로인데. 실력을 키울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문제만 풀어본다.)

이건 참 심각한 문제다. 이런 폐단을 인식하지 못하고, 영어 실력은 안 되는데 그저 점수만 높여서 랭킹 높은 대학, 이름 있는 대학을 보내겠다고 아이를 잡는 부모는 본인이 정말 누구를 위해서 현재 이러고 있는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직성을 풀기 위해서 이러는 건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러는 건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니까 안 하면 뭔가 뒤쳐지는 것 같아 이러는 건지, 아니면 진정으로 내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건지를 말이다. 학벌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나 그건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다.

부모는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만 하면 본인의 임무는 끝났고, 아이가 가서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 영어 실력으로 버거운 학교에 집어 넣어놓고는 아이가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참으로 이기적인 생각이다. 대학은 아이가 가는 거고, 아이가 4년 동안 생활할 곳이고,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가는 거다. 부모를 위해서 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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