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7.

[학생수기] Emory를 2.5년 만에 GPA 3.87로 졸업한 제자의 대학 생활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소위 말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관심도 그다지 없었다. 억지로, 단순히 해야하니까 하는 학생에 불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머리가 더 잘 돌아갈 바로 그 당시에 학업 혹은 관심분야에 정진하여 탄탄한 기본기를 다져놓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있지만서도 바로 그 때 (스트레스가 없진 않았지만) 나를 억누르지 않으셨던 어머니 덕분에 지금 내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성장하면서 초중학교 때의 나를 생각하며 그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항상 부단히 노력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과는 반대로 미국 대학은 고등학교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학업량과 그 난이도가 높아진다고들 한다는 말,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정말 열심히 하면서 도대체 대학이 어려우면 얼마나 어려워질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겁주기위함은 아니지만, 대학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해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에모리대학을 2년 반 (6학기)만에 3.873 / 4.0으로 졸업했다. 물론,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1학년 1학기는 혹독한 적응기였다. 정말 힘들어 엄마와 스카입을 하며 자퇴/휴학하고 돌아가겠다는 등 어린아이처럼 화도 많이 내고 응석을 부렸다. 다양한 배경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규모의 대학은 고등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적응문제, 친구문제 등 많이 외로웠고 누가 내 편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힘들어했었다. 즉, 고등학생 당시의 익숙한 사람들, 환경을 그리워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1학년 1학기 때의 성적이 3.5 / 4.0으로 가장 낮지 않았는지싶다. 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은 위대하고 언제나 시작이 가장 힘든 법.


1학년 2학기부터는 1학년 1학기 때에는 최대 16학점으로 제한되어있었던 스케줄을 최대 22학점/22학점으로 늘렸다. ( 전학기 성적이 3.0 / 4.0 이상이면 1학년 2학기부터 다음학기에 최대 22학점까지 수강가능) 나만의 페이스를 찾아 환경에 어느정도 적응을 했고 1학기 때의 성적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그 미친듯한 결정의 배경은 약 6천만원이 드는 1년 유학생활비였다. 유학은 대개 유복한 집안의 사람들이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험상 꽤 많은 이들이 그러한 삶과 물질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지방출신이라는 특수한점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고향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똑똑한 친구들이 많은데 단지 집안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로 국내대학을 다녀야하는 경우를 되새기며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말이 1년에 6천만원이지 계산해보면 웬만한 기업 연봉은 훌쩍 넘고 웬만한 가정에서 유학은 그림의 떡 혹은 사치이다.

1학년이 대학생활 중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같은 기숙사, 특히 같은 층의 교우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고 뭉쳤으며 첫 해라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한가지 충고해주고싶은 것은, 에모리를 비롯한 어느 대학을 가든 한국인들의 수는 많은데 이를 경계해야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한국친구들을 나름 경계하며 미국 친구들과 주로 지내왔다. (한국인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유학생은 한국인들끼리만 다니려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나도 1학년 때 밸런스를 잘 맞췄지만 외국친구들 사귀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많은 한국인 친구들이 뭉쳐다녀서 아마 나보다 외로움은 덜했을지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다. 같은 국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맞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외국친구들이 더 본인과 잘 맞을지 모른다. 최근에 군 제대를 앞둔 한국인 동기를 만났는데 1학년 재학 중에 외국친구를 한명도 못사겼다는 말을 했다. 정말 심각하다. 어느 양쪽을 배제하지 않은 균형 잡힌 친구들을 사겨나갔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1학년 때 한국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백마" 였다. 나는 단지 미국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을 뿐인데 백인 여자친구들이 기숙사 복도에서 나에게 인사해주면 그들은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것 같다. 얼마나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끼리끼리 뭉쳐다니는지를 여실히보여주는 것 같다.

1학년이 끝나자 90%의 남자 동기들은 군대로 떠났다. 물론 나도 한국인이였기에 2학년부터는 좀 그 친구들이 그리웠고 외로워서 정말 일당백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2학년도 최소 20학점은 들으면서 학업에는 열중했다. 1학년 때는 주말에 종종 Fraternity party도 기웃거리고 했지만 별로 건전한 것 같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파티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1학년 때도 그랬지만 2학년 때도 웬만해서는 12시 혹은 그 이전에 취침하려고 했다. 꽤 많은 학생들이 all-nighter, 밤을 지새우며 due date 전에 과제를 하는데 정말 비추천이다. 사람은 밤에 잠을 자야한다. 나는 일부러 수업도 항상 아침 8:30에 있게하였고 그 전에 아침도 든든히, 때로는 꾸역꾸역, 먹었다. 밥맛 없어도 아침이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식사이고, 아침 안먹고 수업가면 머리회전도 안되고 갤갤거리게된다. 물론 내 생활패턴은 너무 엄격했고 일반 16학점보다 더 많았으므로 그냥 참고용이다. 그 와중에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간 짬짬이내어 학교 헬스장을 찾았다. 몸짱이 되기위해서가 아닌 하루하루를 탄력적으로 보내려면 매일 운동은 건강/효율성 측면에서 필수이다. (물론, 매일 헬스장에 가는 것이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

마음에 들거나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교수님들과 좋은 관계를 쌓는 것도 필수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오피스아워 때 찾아가 인사치레를 하는 것을 나는 기본으로 했다. 내 전공이 아니었어도 나는 매 학기 듣는 모든 과목의 교수들과 친분이 있었다. 짬만 내면 별로 어려운 일 아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졸업할 때쯤에 훗날 필요할지도 모르는 교수 추천서에 대한 걱정은 일절도 없었다. 심지어는 예상치못했던 교수님과의 마지막인사에서 그 교수님이 먼저 추천서 같은 것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기분좋은일도 있었다. 물론, 나처럼 모든 교수들과 만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교수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얘기를 나누며 인간관계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았다. 나의 경우에는 그러는 도중에 누가 "나의 교수"인지 알게되며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또 그러한 좋은 관계가 혹시 성적에 도움을 줄지 누가 아나? 똑같이해도 한 등급정도는 교수의 재량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4년에 할 것을 2년 반만에 끝내느라 정신적/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타학생에 비하면 기타 활동의 질이나 양적인 면에서 부족할 수 있고,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웬만한 학생은 16학점을 듣고 그 모두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20학점+을 들으면서 해내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도 엄격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야식을 먹으며 밤을 지새우던 적 등은 여러 번 있다. 그 와중에도 틈틈히 기타활동을 통해 나름 나만의 대학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Club Baseball Team: 야구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연습은 일주일에 한 번, 조지아텍 팀과 경기도 1-2주 격으로 했다.
-LINK (Liberty In North Korea): 행사에 참석하며 북한 실상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Tutoring at a nearby high school: 에모리에서 제일 가까운 고등학교였는데 유색인종이 대다수였으며 상위층 소수와 두드러지는 정말 색다른 세계였다. 정말 말을 안듣는, 나의 시간이 아까울정도로 기본이 안되있는 학생들을 도우며 많은 것을 느꼈다.
-Emory Environmental Alliance: 환경에 대한 지식 습득 외 Living Green에 관해 활동 등....

나의 경우에는 너무 과하게 활동을 하지 않으려고 자제했다. 왜? 공부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으니까... 리더쉽 자리는 정말 사치였고, 또한 그러한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방대한 스트레스나 시간투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칠 수 있었기에... 하지만 모두가 리더가 되어 Resume에 떡하니 본인을 홍보할 수는 없다. 구성원도 있어야 그룹도 돌아간다. 또한 진정한 리더란 그룹을 잘 이끄는 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룹 내에서 어떻게 잘 화합하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도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구성원으로써의 경험도 쌓여 나중에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도전과 실패의 경험도 있다. RA (Resident Adivsor) Position에 지원해 뽑히지 않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Resume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하는 좋은 경험도 했다. 나를 잘 표현하고 알리지 못한 것이 패인인 것 같았다. 또한, 그만큼 나만큼 혹은 나보다 뛰어나고 적합한 인재들도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마지막으로, 나도 아직 2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지만 20대는 10대보다 시간이 빨리간다. 또한 2년 반만에 대학을 졸업하느라 제대로된 대학생활(?)을 누리지 못했다거나 너무 앞만보고 달려온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막상 대학에 가면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시간이 많이 남는데 최대한 능동적으로 후회를 최소화하는 생활을 했으면 바라는 바이다.

대학생활 중에도 Kew 선생님과는 좋은 사제관계가 이어져왔다. 현지 관련 (여자문제(?)에서부터 학업문제, 복수전공 문제) 등 내가 정말 힘든 고민이 있으면 부모님보다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이유는 우리 부모님도 너무너무 훌륭한 분들이시지만, Kew선생님은 본인이 직접 유학생활을 하셨고 우리가 가는 길을 미리 거쳐가보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댓글 4개:

  1. 이번에 에모리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인데 저도 조기졸업이 목표라서 학생분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6년 지난 포스트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여쭤 봅니다.

    답글삭제
  2. 죄송하지만 연락을 안 한 지가 너무 오래 돼서 연락처가 없습니다. 그 친구와 만나서 어떻게 조기졸업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들었는데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된답니다. 전혀 안 만날 수는 없지만 어울려 다니면 안 되는 건 사실입니다 ^^. 에모리 가셔서 잘 하시길 바랍니다!

    답글삭제
    답글
    1. 네 괜찮습니다 ㅎ 감사해요.
      혹시 그 학생의 전공은 기억 나시나요? 참고로 저는 비즈니스쪽 가려고 합니다.

      삭제
    2. 경제 아니면 정치 둘 중에 하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