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3.

영어학원 리딩 공부법의 문제점

SAT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지문독해다 (GRE, GMAT, LSAT 등 다 마찬가지). 이 독해에서 점수를 올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지문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해석/분석하고나서 비슷한 레벨의 글을 많이 읽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독해를 이렇게 가르쳤다가는 사교육계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런 수업을 받으려고 학원에 등록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일단 SAT 수업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다른 시험의 수업도 대동소이), 우리나라 독해 수업은 이렇게 진행한다. 제일 먼저 시간 내에 문제를 어떻게 풀지가 관건이므로 대개 문제를 먼저 보라고 한다. 문제를 먼저 봐서 라인문제(지문의 줄번호를 알려주고 묻는 문제)를 먼저 풀고 주된 의도나 전체적 내용을 묻는 문제는 나중에 풀라고 한다. 특히 단어의 뜻을 묻는 문제를 먼저 풀라고 한다. 이렇게 부분적인 문제부터 풀기 시작하다보면 지문 여기저기를 읽게 되어 점점 지문 전체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다. 즉, 지문의 이해를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하라는 거다.

이런식으로 풀면 점수가 오를 수 있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시간 절약으로 인해 문제를 다 풀었는데 마침 그 풀었던 문제들이 많이 맞을 경우다. 문제를 다 풀었어도 맞은 답이 얼마 안 된다면 문제를 다 못 풀었을 때하고 점수가 비슷하다. (시험에 따라서는 예전 SAT처럼 틀린 문제도 감점이 있기 때문에. 물론 감점이 없는 시험은 상황이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전체적인 내용을 묻지 않고 부분적인 내용을 묻는 문제를 먼저 풀게 되면, 운이 좋아서 나에게 쉬운 지문/문제가 많이 나올 경우에는 점수가 잘나오고, 운이 나빠 어려운 지문/문제가 나오면 점수가 내려간다 (문제를 다 풀었어도 답이 많이 틀렸기 때문에). 결국 점수가 평균적으로 약간의 상승은 있을 수 있지만(아무래도 영어를 공부하니까) 계속 오르락 내리락할 뿐 꾸준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방법의 치명적인 결함은 이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풀이를 하다보면, 복습할 때 지문을 띄엄띄엄 이해한 상황에서 다음 지문으로 넘어간다는 거다. 일단 답 맞히고 틀린 거 리뷰하고 나면 지문을 더 세심하게, 제대로 안 읽었던 부분까지 분석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 길고 내용도 지루한 지문을 다시 읽고 싶을까? 강사도 지문의 모든 문장을 해석해주지 않는다. 이게 영어실력은 향상시키지 않으면서 문제만 많이 풀게하는 우리나라 영어독해 방법이다. 문제를 많이 풀면 실력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정말 황당한 건, 글을 읽을 때 부분 부분을 먼저 읽어가면서 전체를 이해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이세상에 누가 글을 이런 식으로 읽으며 그렇게 해서 글이 이해가 된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그렇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지문의 이해가 목표가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문제만 더 맞히면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지문을 먼저 보고 문제를 푸는 경우를 보자. 이렇게 전체 내용을 파악하고 문제로 들어가는 방법의 단점은 지문을 먼저 훑기 때문에 시간이 처음에 많이 소요되고 때에 따라서는 문제를 다 풀 시간이 모자란다. 이방법의 또 하나의 단점은 이런식으로 해서 점수를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단기적 효과가 안 나타난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하면 푼 문제에 대해서는 틀릴 확률이 더 적다. 왜냐하면, 정답은 지문의 전체적인 내용(주제, 주된 의도, 글의 흐름, 분위기, 작자의 태도 등)과 관련이 없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글의 흐름과 동떨어진 문제는 거의 없다. 예외가 문장 내의 단어와 비슷한 뜻 찾기 문제 정도? 이런 문제 외에는 거의 모든 문제가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알아야 정답을 고를 수가 있다. 특히 어려운 문제는 더 그렇다.

이런식으로 문제를 풀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지문을 리뷰해서 내가 읽은 게 맞는지 틀린지를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해가 안 된 부분도 제대로 설명을 들어서 이해를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독해력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독해력 어휘력 다 오른다.)

하지만, 이런 자명한 이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거의 모든 영어시험학원 또는 강사는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한 번 비교를 해보자. 영어 지문 100개를 대충 읽고 (문제와 관련된 부분만 이해하고 넘어가고) 문제 1,000개(지문당 10문제라고 치고)를 푼 영철이보다 지문 50개를 꼼꼼히 읽고 해석하고 이해한 후 문제는 500개밖에 안 푼 소영이가 점수가 높지 않을까? 영철이는 지문 1개도 제대로 공부를 안 한 거기 때문에 제대로 읽은 지문은 0개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소영이는 지문 50개를 읽었다. 독해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냥 자연스런 물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려고 하니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나?

우리나라 영어교육 업계가 이 물리적 법칙을 모를 리가 없지만, 이렇게 교육을 안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렇게 가르치면 돈을 벌 수가 없다. 학생이 안 모인다. 진도가 느리고 문제를 많이 안 푼다는 말이 엄마 귀에 들어가는 순간 그 학원은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곧 문닫을 지경이 된다. (미국 대학 가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저 점수만 올리면 된다.) 그래서 이렇게 가르치면 엄마들 반응이, "여기가 무슨 학교에요? 학원이 학원다워야지!" 이런 학원다운 학원이 그동안 우리나라 영어를 다 망쳐놓은 거다. 하지만, 어쩌랴, 소비자가 이걸 원하는데.

학생과 엄마가 이런 상황이니 학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학생에게 진짜 실력은 오르지 않더라도 헛실력이라도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하며 (모의고사 성적이 오르게 문제를 내거나 수업하는 학원이 실제 존재한다. 모의고사에 나올 단어 위주로 수업을 한다.) 문제를 많이 풀어서 마치 자기가 공부를 많이 하고 있으며 아는 게 많아졌다고 생각하는 허상을 심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걸 특히 엄마한테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숙제와 암기단어리스트를 말도 안 되게 내준다 (하루에 단어 500개 외우고 시험봐서 통과 못하면 붙잡아 두기). 학생이 도저히 끝낼 수 없는 양의 숙제를 내주는 학원 앞에서는 엄마가 고개를 숙인다. 그 반대의 학원에는 항의와 환불요구가 빗발치고. 저렇게 많이 내준 숙제를 우리 아이가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돈과 시간 낭비 아닌가? 그래도 학원은 이렇게 해야 한다.

문제를 많이 풀면 영어실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고 문제 푸는 실력이 올라간다(문제를 분석하는 능력, 답을 찾는 능력, 보기를 분류하는 능력 등). 영어 독해력(긴 지문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은 빨리 제대로 읽고, 덜 중요한 부분은 빨리 훑고 지나가는 법, 글을 이해하는 속도, 저자의 주장, 의도, 태도 등을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주위에 보면 실제로 학원을 다녀서 점수가 올라 대학/대학원을 가지 않나? 여기에도 착각이 있다. SAT를 예로 들자면, 영철이가 00학원을 다녀서 SAT 리딩(만점이 800)이 550였는데 650으로 올랐다고 치자. 그럼 00학원이 잘가르쳤다고 소문이 날 거다. 그런데, 550에서 650으로의 점수 상승은 영철이가 다른 학원을 다녔어도 단어 열심히 외우고 문제를 많이 풀면 나오는 점수다 (정말 형편없는 학원만 아니라면). 리딩에는 단어의 빈칸 넣기와 지문분석이 있는데 단어의 빈칸 넣기에서 점수가 많이 올라도 이런 점수 향상이 온다. 그리고 550에서 650으로 못 올린 학생은 그 학생이 공부를 그만큼 안 해서 안 오른 거지 학원이나 강사가 나빠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새로 바뀌는 SAT에는 이 빈칸 넣기가 없어진다. 100% 지문 문제와 문법만 나온다.)

그렇다면 영철이의 독해력은 어떻게 됐을까? 영어 독해력이 100점 향상한 건가? 아니다, 단어를 그만큼 많이 외워서 단어 빈칸 넣기를 더 잘하게 된 거고, 문제 푸는 감이 생겨서 점수가 오른 것뿐, 지문의 독해력이 향상한 건 아니다. 독해력이 향상되었다면 700이 나와야 한다. 700은 독해력의 향상없이 맞기 힘든 점수다.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까? 리딩 점수가 100점 오른 영철이한테 시험에 나온 지문과 비슷한 레벨의 다른 지문을 갖다주고 읽고 해석하라고 해보면 독해력이 그 전과 비슷하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동안 영어를 1,000 명 이상 가르쳐 봤지만 예외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영철이는 독해력에서 큰 향상이 없었지만, 대학 지원은 650정도에 맞는 대학에 하고 또 합격도 한다. 그리고는 그 대학에서 독해력이 650인 미국애들과 경쟁하게 된다. 이건 뻔한 게임 아닌가?


이렇게 영어학원에서 지문은 해석 안 하고 시험문제만 풀면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학생과 엄마가 원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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