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명문대는 착한(nice) 학생을 좋아한다.
왜 착한 학생인가? 학교 웹사이트에 가보면 리더쉽 강한 학생,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 학생, 지적 호기심이 많은 학생 등을 원한다고 적혀 있는데 필자는 왜 하필 착한 학생이라고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자. 하루에 삼사십 개 원서를 보는 입학사정관들, 수만 개의 에세이를 몇 달 동안 읽는데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원서가 눈앞에 들어오면 이들 기분이 어떨까? 이들은 서너 달을 고도의 스트레스 속에 업무를 하므로 이런 원서가 나오면 솔직히 더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짜증이 난다고 한다. 이들은 편한 소파에 앉아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원서를 즐기는 게 아니다. 자정을 넘어 눈이 충혈된 상태로 레드불을 마시며 깨알같이 쓴 원서를 읽고 있는 거다. 수만 개를. 몇 달 동안. 이런 상황에서 착하게 보이는 학생이 나오면 그 학생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하다. 착한 학생을 뽑는 것이 옳은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 진행과정에서 착한 학생에게 관심이 가게 되는 거다. 미국 문화에서는 본인의 주장과 장점을 당당하게 내세워야 한다? 맞다. 하지만 잘난 척하고 신경 거슬리게 하는 건 다른 얘기다. 제발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봐주세요는 안 된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미국도 착하고 도덕적인 학생을 좋아한다. 입학사정관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말자. “우리는 nice한 학생을 원합니다.” 입학사정관의 공통된 말이다.
4. SAT, 인풋(input)이 아니고 아웃풋(output)을 생각하자.
여기서 인풋은 SAT 준비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고, 아웃풋은 SAT 수업에서 남은 자료이다. 점수가 아니다. 필자가 본 많은 학생이 다음과 같다. 여름 동안 풀어본 문제를 나중에 다시 보자고 하면 잃어버렸다고 한다. 단어장 보자고 하면 그것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강의 때 노트한 거 있느냐고 물어보면 별로 없다고 한다.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체계 없이 대충 말한다. 학생과 부모는 이런 걸 강사가 요약/정리/집대성하여 그것만 보면 점수가 오를 수 있는 그런 자료를 눈앞에 딱 내놓기를 원하는 거 같다. 이전 칼럼에도 썼지만, SAT는 족보만 공부해서 볼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이 아니다. 본인의 자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자료가 쌓여야 본인이 틈틈이 리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본인의 단점을 보완하여 실력이 향상하는 거다. 실력 향상의 제일 큰 걸림돌은 본인의 현재 상태를 잘 모른다는 거다. 본인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앞으로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어떻게 효율적인 학습전략을 짜야 하는지 알 텐데 아무 자료가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럼 계속 헤매며 시간 낭비하는 거다.
학원에서 준 자료를 바탕으로 본인의 시험문제, 단어장, 노트를 만들어라.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그렇게 오래 다니고 많이 다녔는데 애 성적이 안 올라요.” 학원 선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 무엇을 남겼는지 보라. 공부하고 남은 자료가 무엇인지, 단어장과 연습문제에 필기가 많은지, 본인 노트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남긴 게 없다면 학원이나 선생을 탓하지 말자. 학생이 공부를 안 한 거다.
5. 대학지원은 에세이 경연대회가 아니다.
합격생의 에세이는 당연히 좋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이, 불합격한 학생 중에도 좋은 에세이가 있다는 거다. 특히, 최근에 많은 에세이 컨설팅이 생겨 전체적으로 한국 학생들의 에세이 수준이 높아졌다. 그럼 도대체 에세이를 얼마나 잘 써야 하나? 전문 작가를 섭외해야 하나?
위 3번에서 착한 학생이 뽑힌다고 했다. 에세이 중에는 “아, 이 학생은 너무 착하고 마음에 쏙 들어.”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있다. 이런 지원자가 뽑힐 확률이 높다. 그러니 에세이에서 건방진 자기 자랑하지 말라 (특히 상위권 학생들), 에세이로 감동을 줘라 등의 얘기가 나온 거다. 그런데 미국 대학 원서 에세이는 에세이 경연대회에 출품할 작품이 아니다. 영문학 박사학위자가 도와줘야만 좋은 에세이가 나오는 게 아니다. 학생의 어떤 면(소재)으로 어떻게 착하게 보여줄지, 이 문제를 해결한 글이 좋은 에세이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원서 에세이를 잘 쓰는 것은 다른 얘기다.
6. SAT 공부는 손으로 하는 거다.
SAT를 가르치다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현상이 있다. 학생이 질문한다. 그래서 설명해준다. 그러면 고개를 끄덕이고 알았다고 하며 멀뚱멀뚱 필자를 쳐다본다. 나도 학생을 쳐다본다. 학생은 내가 왜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모른다. 그때 학생에게 말한다. “적어!” 본인이 모르는 걸 대답해주면 듣고 고개만 끄덕인다. 어떻게 한 번 듣고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얼마 뒤에 물어보면 또 대답을 못 한다. 그래서 다시 알려줘도 이번에도 적지를 않는다. 정말 답답하다. 기출문제를 풀 때 전략을 알려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 푸는 스텝을 알려준다. 필기하는 학생이 별로 없다. 그냥 듣고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니까 자기가 아는 걸로 착각한다. 성적이 안 오르는 학생의 전형적인 수업태도다. SAT는 머리로 공부하는 게 아니다.
SAT를 가르칠 때 일어나는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필기를 정말 귀찮아한다. 심지어 필자보고 워드로 쳐서 프린트해 달라고 한다 (이것도 줘봐야 잃어버리는 학생이 많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주면 그것만 공부한다. 자기가 만든 내용은 없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점수를 얻고자 한다. 꼼수, 편법 등 그저 쉽게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러니 시험지 관련 문제가 터지는 거 아닐까? 4번에서 말했듯이 수업 듣고 교재나 시험지에 필기한 것이 없으면 그 학생은 100% 공부를 안 한 거다.
SAT나 미국 대학 공부가 힘든 줄 알면서도 당장 눈앞의 결과 때문에 그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대학이 어디 들어가고 나면 그만인 우리나라 대학 같은가? 미국 대학 잘 들어간 후에 고생한다는 얘기는 결코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내일신문 4/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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