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학원에 출강했을 때의 일이다. 여름 수업이 종료된 후 엄마들로부터의 평가가 안 좋았다. 학생들 SAT 리딩 성적이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애들 학습 태도가 개판인 반였다. 물론 애들은 다 착했다. 나쁜 애들이 아니라 그냥 5분을 집중해서 영어문장을 쳐다볼 수 없는 아이들였다. 아무튼 그럭저럭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나름 수업을 끝냈지만, 2달이 지나도 성적이 안 올랐다고 불만이 쏟아져 나와 학원원장이 나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맡게 되면 내 목표는 당장 눈앞의 점수가 아니다. 남자 친구 때문에 맨날 울면서 고민하는 아이가 아프로 남자한테 관심을 끄게 만들 수도 없고, 게임에 빠진 애가 내 수업을 듣는다고 게임을 끊는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런 애들을 맡게 되면 언젠가 각자 때가 되면 (그 때라는 건 학생마다 다르다),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이 되면 나를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신뢰를 주는 거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철이 들어서 찾아오는 학생이 꼭 있다). 물론 단어도 가르치고 문법도 가르치고 학업적 내용은 다 전수하여 한 가지라도 배워가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아이들한테 그걸 다 소화해서 점수를 올리라고 말하는 엄마에게는 그 돈 가지고 딴 데 가시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니, 선생님은 도대체 뭘 하시길래 애가 2주가 지났는데도 점수가 안 올라요?"라는 얘기를 들으면 이런 말이 혀끝까지 나오다 만다. "아니, 어머님은 지금 애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머님 애는 지금 영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공부 자세와 태도가 문제입니다. 어머님께서 아이에 대해서 모르시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건 알고 계신지요?" 하고.

아이의 병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한테 다그친다. 그리고 효과가 직빵인 약이나 주사를 주는 의사는 명의라고 소문이 난다. 그 "명의"는 부자가 되고, 엄마는 주위의 부러움을 사 목에 힘주고 다니며 자신의 업적에 스스로 뿌듯해 할 때, 애는 골병이 든다. 매해 이런 경우를 보면 정말 애만 불쌍하다. 애가 무슨 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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