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7.

소개팅과 미국 대학 입학, 그리고 생선회

유정이는 올해 E여대 2학년으로 명문가 출신에 168cm, 48kg의 날씬한 몸매, 하얀 피부의 청순한 이미지의 소유자다. 청바지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그녀는 등하교 때마다 모든 학생의 이목을 받는다. 외모뿐만 아니다. 데이트에서 반은 본인이 밥값을 낼 정도로 성격도 ‘쿨’하고 온종일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그녀의 재치와 유머는 여느 개그우먼 못지않으며,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명석한 두뇌는 그녀가 2년 연속 과 수석이라는 사실을 놀랍지 않게 한다. 집안이면 집안, 공부면 공부,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그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그녀도 남다른 고민이 있다. 바로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날아오는 데이트 신청이다. 남자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멋진 남친을 갖고 싶지만, 문제는 상대를 고르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소개팅 또는 데이트 “지원자” 대부분은 명문 법대, 의대 아니면 치대 출신으로 키 180cm 이상에 몸무게 75kg, 얼굴은 당연히 훈남에 고급차는 필수다.

미국의 명문대들이 매해 수만 건의 지원서를 받는데, 이 학교들의 입학사정관들도 이 모든 지원서를 보며 느끼는 심정은 유정이가 느끼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다. 도대체 여기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예전에 코넬대학교 입학사정관은, “지원자들 95%는 객관적 자료(GPA, SAT)가 거의 같다”고 했다. 이럴 때 입학사정관들은 주관적인 자료 즉, 에세이와 추천서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모두 좋은 성적과 눈부신 과외활동을 한 상태에서 당락의 결과는 결국 지원자가 어떤 주관적인 데이터를 제출하여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에 들게 했느냐에 달린 거다. 그 주관적 판단을 돕는 자료가 에세이와 추천서이며, 이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 에세이다. (웬만큼 우수한 학생이면 학교에서 좋은 추천서는 받을 수 있다.)

유정이도 결정을 못 내린다. 김군은 대학이 마음에 드는데 이군은 집안이 자꾸 끌린다. (박군을 거절하자니 그의 외제스포츠카가 조금 아쉽다.) 결국 유정이가 선택한 방법은 모두 만나보고 결정하는 것. 만나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목소리나 풍기는 이미지가 어떤지 직접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관심사(Interest)는 무엇이고, 어떤 관점(Perspective)을 가졌는지, 또 인생의 목표(Goal)는 무엇인지 직접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스펙이 아닌 본인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 유정이의 생각이다. (그녀에게는 특히 지원자의 리더쉽, 열정 등 인간적인 면에 크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스펙에서는 이런 주관적인 요소는 결코 알아낼 수가 없다.) 이런 반면, 지원자들은 소개팅 주선자에게 본인의 피상적인 장점들만을 골라 잘 얘기해달라고 부탁한다. 김군은 본인의 학벌, 이군은 본인의 집안 (박군은 외제스포츠카?) 등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본인의 스펙을 줄줄이 열거 또는 과장하여 본인을 최대한 멋진 남성으로 포장한다. 유정이와 직접 만나서도 이런 면들을 과시하기에 바쁘다. 정작 유정이는 어떤 생각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 명문대 입학사정관들은 지원자나 그 부모와 사고방식이 매우 다르다. 최고의 SAT 점수와 GPA, 무수한 과외활동 내용을 가지고도 모든 Ivy 리그 학교들에서 불합격되는 예가 매해 나오는 반면, 기본 스펙이 다른 지원자들의 평균 이하임에도 그들을 제치고 붙는 학생들이 매해 있다. 우리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것이 미국 대학 입학의 특징이며 이러한 ‘기이한’ 현상의 원천에는 입학사정관들의 주관적 판단이 있다. 이들의 마인드를 읽는 것이 미국 대학 입학의 열쇠이며, 이러한 이해를 갖춘 상태에서 에세이와 원서작업을 해야 한다. 특히, 이 주관적 판단요소에서 타 지원자들보다 두각을 나타내려면 지원서의 에세이에서 본인의 차별화된 요소를 “적절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지원자들은 이 부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사실, 입학사정관들이 어떤 마인드로 학생을 뽑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심지어 많은 컨설팅 업체도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참치회에서 최고급부위로 쳐주는 것이 가모도로(특 뱃살)라고 한다. 미국 입학사정관들이 원하는 것은 가모도로인데 우리 생각에 건강에 좋다고 아무리 아나고(붕장어)를 갖다 바친들, 왜 아나고를 갖다 주는지 이해할까? 벌써 다른 아나고들로 신물이 났을 거다.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지원자들은 미국 명문대 입학이 점점 더 어려워질 거다. 유정이를 이해 못 하는 김군, 이군, 박군처럼.

(내일신문 4/27/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