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3.

미국 대학은 합격이 끝이 아닌데...

한국에서 대학 실패 후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던 상태에서 미국 대학 입학 전 여름방학 때 대학교 물리교재를 빌려서 공부를 혼자 했다. 아침에 숙소를 나와 대학교 학생회관(Student Union)에 가서 시간 나는데로 공부를 했다. 한국에서의 대학 실패에다가 고등학교 때 화학/생물만 했고, 또 미국은 공대도 다 주관식 시험이라 겁을 잔뜩 먹고 방학 때 공부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물리 첫 중간고사를 봤는데 전부 주관식였고 답을 차근차근 써갔지만 워낙 객관식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시험 망친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약 200명 중 최고점인 126점을 받았다. 평균은 60점였다. 사소한 실수(단위를 빼먹었거나 설명 부족으로)로 4점이 깎였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겨울방학 들어가기 전에 거의 모든 학생이 떠난 한산한 기숙사에서 TA한테 전화를 건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Brad라는 멀대같이 큰 TA에게 전화를 해서 점수를 물어봤더니 대답이, "Kew, you blew it! (너 시험 망쳤어)"라고 한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자 곧 "No, you got the top score. Don't worry about the grade (아니, 너가 최고 점수를 받았어. 성적 걱정은 안 해도 돼.)"라고 했다. 중간, 기말 모두 최고점였다. 전화를 끊고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걱정이 한 번에 탁 풀리면서 쓸쓸한 기숙사 방에서 혼자 울었다. 남들이 보면 오바같지만 그때는 정말 한국에서 재수까지 하며 대학 실패한 것이 너무나 큰 한이 됐기 때문에 첫 학기를 잘 마치고 나서야 그 응어리가 풀렸던 거 같다. (게다가 그 학기에 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치료 중이셔서 부모님 생각과 겹치면서 눈물이 왈칵 났던 거 같다.) 거의 1년 동안 가슴에 품고 다녔던 응어리였다.

그 이후 자신감을 얻어 한국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미국 대학에서 공대필수인 물리 1, 2, 3을, 전공 필수/교양으로 들은 공대역학(engineering mechanics), 공대물리 (engineering physics) 등 물리관련 과목을 다 A를 맞았다. 물리 전공과목은 당연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겠지만 공대생이 들어야 했던 물리는 너무 재밌고 쉬웠다. 대학 입학 전 여름방학 때 물리를 조금 준비했던 것이 이렇게 큰 효과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미국 대학 지원자들은 한창 원서 준비 중이다. 이 학생들 너무 바쁘고 힘든데, 원서 넣고나서, 그리고 내년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해방감에 대학 가기 전에 실컷 놀 거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사실 걱정도 된다. 미국 대학은 합격이 끝이 아닌데. 그때부터 본 게임인데. 특히나 영어 독해와 작문이 제대로 준비 안 된 많은 한국 지원자들은 쉽지가 않을텐데.

영어가 조금 부족한 한 학생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많은 생각이 났다.